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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북한산(北漢山)의 성문

by 뚜버기여행@ 2019. 2. 19.

사적 제162호
북한산성(北漢山城)

지금의 북한산성은 조선 제19대 숙종37년(1711년)에, 삼군문(훈련도감,금위영,어영정)과 도성민이 4월3일 착공하여, 10월19일에 완공시킨것으로. 둘레 12.7km 체성 7,620보를 축성하였다. 성내에는 행궁, 장대, 유영등이 구한말까지 유지되었으나 19~20세기초 성곽만 남고 소멸되었다.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중 대동문(현 대성문) 다음으로 규모가 크며, 의상능선의 의상봉과 수문 사이에 위치해 있는문 으로, 성내부로 통하는 주 출입구로 사용되고있다.  현재의 문루는 1950년대에 복원된것.

대서문(大西門) 안

가사당암문(架娑堂暗門)

의상봉(義相峰)과 용출봉(龍出峯)571m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8개의암문중 하나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가사당암문아래에는 국냉사(國寧寺) 사찰이있다.

 

가사당암문(架娑堂暗門)

 

가사당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로,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위해 적이 비교적쉽게 접근할수있는 고갯마루 나 능선에설치했다. 국녕문(國寧門)으로도 불린다.

 

부왕동여장(扶旺洞女墻)
여장(女墻)이란 성벽위에설치한 낮은 담장으로,적을 관측하고 공격하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자도 넘을수있다고 하여 여장(女墻)이란 이름 을 붙혔다고하며, 이곳 부왕동암문 가까이에있는 여장은 `부왕동여장`으로 불리는데, 대략8.4km에달하는 북한산성의 여장중에서 그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 

북한산의 나월봉과 증취봉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있는 부왕동암문(扶王洞暗門)은,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8척이로, 부암동암문 아래에는 원각사(圓覺寺)가 자리잡고있었다.이 원각사는 산성의 축조와수비,관리에 큰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는데,부왕동암문의 실질적인 방어와수축을 당담한것으로 추측되며, 부왕동암문을 원각문(圓覺門) 으로도 불린다.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

북한산의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있는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은,  1711년 숙종 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로,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위해 설치하였다

 

대남문(大南門)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년)에 지어졌으며, 서님문이라고도 불리는데, 대남문은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춤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다. 상부에는 군사를지휘하고 성문을 지키기위한 단층의 문루가있다.이 문루는 소실되었던것을 1991년에 새로 복원한것이다.

대남문(大南門)

 

대남문에서 대성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성벽

 

△대성문(大成門)

대성문은 보국문과 대남문사이에 위치한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대동문(大東門)이었으며,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3척, 너비 14척이다. 문루는 1990년대에 와서야 우진각 지붕형태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되었다.

보국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보국문 성벽

 

△ 보국문(輔國門)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보국문(輔國門)은, 규모를보면,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6척 6촌, 너비 6척 5촌이다. 북한산성 축조(1711년)후 동쪽에있는 암문이란 뜻으로 동암문(東暗門)이라 불리었으나 그 아래 보국사를 창건한 이후 현재까지 보국문이라 불리고 있다.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대동문 성벽

△ 대동문(大東門)

대동문(大東門)은 북한산성의 용암문과 보국문 시이에있는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소동문(小東門)이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10척이며, 현재의 문루는 1993년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되었다.

대동문에서 동장대로이어지는 성벽

 

△동장대(東將臺)

동장대(東將臺)는 북한산성 동쪽  대동문(大東門)위에 위치한 장대로, 북한산성 3개의 장대 중 가장높은곳에 위치해 있다. 동장대는 조선 숙종 37년(1711년) 외침을 막기위해 돌로쌓은 석성(石城)으로 주변성곽이 많이훼손됐으나 서울시가 1년여의 공사를통해 주변 89.2m와 대남문에서 대성문 구간 1백12.5m에 이르는 성곽을 옛모습대로 1996년 11월 북한산성 동장대(東將臺)와 주변 성곽에 대한 복원정비공사를 완료했다.

 

용암문으로가는 능선 성벽

 

용암문(龍巖門)

용암문(龍巖門)은 북한산성 대동문과 노적봉사이에 있는 암문으로, 원래 이름은 용암암문(龍巖暗門)이었다. 조선 시대 단위로 규모는 높이 6척 5푼, 너비 7척 5푼의 암문

노적봉~으로 이어지는 성벽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백운봉과 만경봉사이에 위치해있는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은, 일제시대 이후 산성 제일위에 자리하고있어, 위문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암

 

백운대 아래까지 이어져있는 성벽

북문(北門)

북문(北門)은 원효봉능선 아래에있는 문으로.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1척, 너비 10척의규모. 홍예문으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문루는없으며 초석만 남아있다. 원효봉과 영취봉사이의 해발430m지점에 위치해있는 암문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성

 

 

원효봉

△ 서암문(西暗門)

북한산성 원효봉아래에 있는 서암문(西暗門)은,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7척, 너비 7척. 외부와 내부를 모두 홍예 모양으로 만들었다.서암문(西暗門)은 1711년(숙종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중 하나이다..서암문의 주변은 지형이낮고 험하지 않아 취약지대에 속했다.이를 감안해 다른암문에 비해 성벽을 높게쌓았다.또한 성문과연결된 성벽을 ㄱ자모양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수있도록 했다.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屍身)을 내보내는 문이라하여 시구문(屍軀門)이라고도 불렀다.

 

⊙수문 (水門)

수문(水門)은 대서문과 서암문 사이 계곡에 있는 북한산성의 문으로.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16척, 너비 50척. 북한산성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여 북한산의 모든 물이 이곳으로 흘러나온다.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려우며, 계곡옆 능선위로 무너진 성벽이 남아있다. 다만 수문주변 바위에는 축성 당시로 추정되는 구멍들이 여러군데 남아 있다.

 

 

△중성문(中城門)

북한산의 중성에 위치한 홍예문인 중성문(中城門).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11∼13척, 너비 13∼14척이며, 이문은 북한산의 노적봉과 증취봉사이의 협곡에쌓은 중성(中門)에 설치된 성문.

 

중성문 옆 암반에 폭2.1m,놏이1.8m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없었으나 생긴 시신(屍身)이 중성문을 통과하지못하고 이문을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屍軀門)이라 불렀다. 중성문 계곡에 수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현재에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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