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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변화

by 뚜버기여행@ 2019. 4. 25.

조선 시대 한글서체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세종대왕유적관리소,「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개최

2019.04.25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오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 상반기 기획전을 개최한다.

자료출처/문화재청

 

 

이번 전시는 세종대왕 탄신 622돌(5.15.)을 기념하여 기획한것으로, 한글 서체의 변화를 볼수있도록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대표 유물을 선보인다.

 

조선 전기 서체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 속에서 동일한 두께와 각진 획의모습을 보이며, 필기보다는 인쇄를 전제한 것으로 흔히 판본체(板本體) 혹은 판각체(板刻體)라고 부른다.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

1445년(세종 27) | 36.0×22.4 | 복제품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글 창제 당시의 정사각형 서체와 좌우 대칭의 구조를 가지며, 붓끝을 가운데 모으는 필획에서 약간의 필사가 가미된 훈민정음체이다. 전반적으로 자형이 넉넉하고 근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당시 한글서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창제 당시 한글의형태는 당시 일반적인 필기도구인 붓으로 쉽게 쓰기 어려운 기하학적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 중기 한글 서체의 특징은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을 통해 알수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한글 서체는 궁체(宮體)를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조선초기 판본이나 활자의 기본 형태에 붓으로 쓴 느낌이 가미된 것으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전형(典型)이 만들어지게 된다.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 1652년(효종 3)~1659년(효종 10) | 50.0×39.0 |
보물 제1947호 | 복제품 | 국립청주박물관

《숙명신한첩》은 효종(孝宗:1619~1659)의 둘째 딸인 숙명공주가 궁궐에서 출가한후 40여년간 왕과 왕비, 대비 등과 주고받은 한글로 쓴 친필 문안편지를 모은 서첩이다. 효종의 글씨는 행간을 많이 띠우지 않으며 세로줄은 맞추었지만 가로줄은 맞추지 않았고, 행의 중심축이 글자의 가운데에 있다. 효종의 글씨에서는 궁체 흘림의 형태도 나타난다.

 

궁체는 주로 왕실의 필사본 서적에서 빼어난 모습을 볼수있고, 붓의 꺾임과 부드러운 흐름을 조화롭게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글 서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문학의 융성으로 필사가 늘어나던 영·정조대를 거치며 정제되었고,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글씨와 명성황후의 편지글은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들이다. 이밖에도 사대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궁체로 거침없이 쓴글, 그리고 민간에서 베껴 쓴 필사본 소설들에서 획의 변화와 강하고 약한 기운이 교차하는 선들을 볼수있다.

 

명성황후 한글 간찰(明成皇后諺簡)

| 1890년대 | 22.5×12.4 | 국립고궁박물관

성황후는 여흥민씨 집안의 일원들과 많은편지를 주고받았다. 흘림체로 필세가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붓놀림이 유려하고 침착하여 궁체흘림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줄을 맞추는데 신경 쓰지않고 거침없이 쓴 필체로 경쾌하고 율동미 있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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